단상

신년 소고 2025

MU1 2025. 1. 27.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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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소고

신년이라고 해봐야 별 감흥은 없지만 연말연시를 맞아 간만에 일이 한가해지자 자연스레 내 생활과 마음가짐을 돌아보게 된다. 얼마나 감흥이 없냐하면, 새해 첫 날 0시에 물론 깨있었지만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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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밝은 새벽에 출근하면서 찍은 사진.

구정을 맞이하여 새삼스레 생각을 정리 중이다. 작년 거의 말일까지 해외여행을 다녀오느라 신정에는 이렇다 할 새해 다짐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경험상 이 회사에서의 1월은 항상 분주했던 것 같은데, 올해는 유독 심했다. 작년에 미뤄둔 일들이 두서없이 쏟아지는 통에 첫 달부터 야근을 무시로 하면서 한 달이 그냥 이렇게 지나가 버렸다. 뭐, 솔직히 해가 바뀌는 것에 큰 감흥이 있느냐 하면 사실 그렇지는 않다. 어디까지나 외적 요인에 변화가 많은 시점이어서 그에 맞춰 나도 점검이 필요할 뿐이다.
올해는 특히 큰 변화가 있다. 직무도, 직책도, 부서도 바뀌었다. 부서 이동은 만 십년 만이다. 마침 작년 말 우수직원 상을 받아서 박수칠 때 떠나는 좋은 모양새가 되었다. 동시에 퇴사의 기로에서 여러모로 고심하고 협상한 끝에 내린 결정이기에 마치 이직한 것과 같은 부담감이 있다. 또래에 비해 책임감이 과한 내 기질을 알아본 어른들은 이렇게 긴장한 내게 이미 잘하고 있다고들 격려해 주시고는 한다. 이번에도 동호회에서 친해진 한 이사님께서 내 장점을 하나하나 따뜻하게 읊어 주시며 의식적으로 잘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조언을 해 주셨다. 나는 이런 인복 하나는 타고난 것 같다. 실바람에도 흔들리는 불안한 기질에도 불구하고 애정어린 어른들의 조언에 의지해 매해 버텨올 수 있었다.
이사님께서 알려주신 내 장점들은 의외였다. 이사님이 보신 나는 사려 깊게 말하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란다. 나는 언제나 대화가 어렵고 실천이 느린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약점이라고 인지했던 부분에서 뜻밖의 칭찬을 받자 자신감이 솟아났다. 특히 올해부터 관리직을 맡게 되어서 바싹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그렇게 직책에 얽매이지 말라며, 그냥 팀원들에게 많이 공감해 주고 신뢰를 쌓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말씀이 1월 내내 혼란스럽던 내 심신을 진정시켰다.
그래서 지난 1월은 어땠냐건, 각오는 했지만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회의와 업무량에 치어서 호된 신고식을 치른 느낌이다. 심지어 후임자가 늦게 정해지는 바람에 후임자와 인수인계 시기를 두고 약간의 눈치 싸움을 하고 있어 더 피곤하다. 그런데 후회는 전혀 없다. 나는 늘 그렇다. 뒤돌아보지 않는다. 오로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그것만이 가장 큰 관심사다. 이런 내 성향이 마음에 든다. 나는 앞으로만 나아가는 사람. 앞에 무엇이 놓여 있더라도.
한편 어머니는 새해 벽두부터 유난히 바빠진 내 모습을 영 탐탁찮아 하신다. 내가 어쩌다 괜히 팀 분위기가 별로 안 좋은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다는 말을 흘려서 그렇다. 혹시 부당하게 일을 많이 떠맡은 것은 아닌지 덜컥 조바심을 내시는데, 소위 호구잡혔던 시절을 겪을만큼 겪어서 그런지 웬만큼 업무가 몰려도 눈하나 깜짝 안 하는 내 맷집을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다. 실상은 '부당하게' 업무가 몰릴 때까지 가만히 있지도 않는다. (엄마, 나 이제 그정도 짬 아니야..) 다소 소극적인 후임자의 태도를 간파하자마자 전 팀장, 현 팀장 그리고 당사자에게까지 찾아가 일대일로 원하는 인수인계 시점을 협의했다. 그게 뭐. 충분히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선에서의 협상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조금도 손해보지 않고 일하려는 사람이 되기 싫다. 어머니야 내 자식이 밖에서 고생할까봐 부러 사서 걱정하시지만, 글쎄, 15년차 직장인으로서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약간 손해보는 구간이 있으면 웬만큼 보상으로 돌아오는 구간도 있더라. 그보다 더 바람직하게는, 손익을 일일이 계산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은 대개 손해 본 것만 기억하고 이득 본 것은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어서 본인 기준 약간 손해본다 싶게 살아야 밸런스가 맞는다는, 사회 초년생 시절 까마득히 높은 보스가 알려준 진리가 참으로 옳았음을 느끼며 산다. 좁은 시야로 손해를 피하는데 골몰하는 인간은 결국 이기적인 사람으로 낙인찍히거나 실제로 이기적인 편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경쟁에서 밀려나겠지.
더 성장하고 인정받기 위해 일정 기간 고생하는 것은 누구 좋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이 고만고만한 월급쟁이들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하려는 싸움이다. 나는 절대로 우위를 놓치지 않을 거다. 실무적인 능력 뿐 아니라 평판도. 다 가질거야. 이제까지 그래 왔듯이.
... 쓰고 보니 올해도 야망 가득한 한 해가 되겠군. 무욕한 일개미라는 닉네임이 무색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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