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팀장이 될 재목인가? 그리고 나는 왜 팀장이 되고 싶은가? 이 두 가지 고민을 시작하자마자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졌다. 비슷한 시기 나와 같은 팀 중간 관리직으로 이동한 동료가 육아휴직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부서이동 전부터 팀장과 그 위 헤드는 임신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길어야 고작 반년 이내에 팀에 큰 변화가 생길 걸 알면서도 채용을 강행한 거였다. 대체 무슨 의도였을까 그 세 사람은. 안 그래도 팀 구성원의 잦은 변경 때문에 주니어 연차들이 혼란스러워하는 상황이었는데. 옅은 배신감도 잠시, 최소 일 년 이상의 중간관리자 부재를 어떻게 다룰지 숨 가쁜 결정이 뒤를 이었다.
매니지먼트의 결정은 흥미로웠다. 그녀의 관리 하에 있는 인원은 몇 년 전부터 지속되던 고질적인 갈등이 있어 이번 관리자 부재를 빌미로 거의 절반이 공중분해 될 거라고 한다. 그것만도 놀라운데, 심지어 내가 관리하는 인원과 업무를 분담하라고 한다. 뭐, 지금 내가 리드하는 프로젝트가 제때 마무리 된다면 업무량 측면에서 별로 불만 가질 요소는 없었다. 그리고 내가 거의 유일하게 실무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업무와도 큰 연관이 있어 질적인 측면에서도 나쁠 것 없는 딜이다. 내가 짚고 넘어갔으면 하는 것은 조직 체계였다. 이미 우리 두 워킹 그룹의 업무 연관성이 높아서 내가 조직을 교차하여 리드하는 커뮤니케이션이 꽤 많은데, 이렇게 실무만 넘어올 게 아니라 관리자로서의 권한과 책임도 다 주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퍼뜩 스쳤다.
하지만 실제로 입밖으로 튀어나온 첫마디는 내 속내와는 정반대의 제안이었다. 내가 쥐고 있는 실무 중 일부를 정리해서 상호 균등하게 업무 체계를 재분배하자는 말이 어찌할 새 없이 흘러나왔다. 나와는 다른 성향을 가진 또 다른 중간관리자가 합석한 자리여서 그의 눈치를 보느라 그랬던 것 같다. 그도 본인 조직이 최근 좀 축소된 터라 기회만 된다면 재확장을 꿈꾸고 있을 터였다. 쓸데없는 견제를 당할까 지레 겁먹고 연막을 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제 막 관리자로서의 트랙을 타기 시작한 초짜인 내가 갑자기 두 배 이상 늘어난 인원을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했다.
막상 내 제안은 간단하게 기각됐다. 내가 넘기려고 했던 실무도 결국은 내가 리드하는 큰 업무범위에 속하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팀장이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면 이미 두 그룹을 넘나들며 일하는 내게 실무만 주진 않았을 것이다. 실무만 덤핑 하자마자 바로 전체적인 오너십을 아예 놔버리려는 내 복잡한 속내를 간파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게 별다른 선택권 없이 이 급작스런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나 심란한 마음으로 혼자 늦게까지 야근을 하던 중이었다.
우리 부서 헤드도 간만에 늦게까지 남아있었다. 자정을 넘겨서야 퇴근하시나 싶더니 내 자리로 와 잠시 머뭇대다가 혹시 두 그룹을 모두 임시로 맡아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했다. 짐작컨대 제안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계획된 질문도 아니었다. 아주 우연히 사무실 전체에 우리 둘만 남은 상황에서, 끈덕지게 일하는 내게 뭔가 격려 한 마디라도 해주고 가려는 분위기였다. 아닌가? 생각해 보니 부서 헤드나 직속 팀장님 그리고 타 부서 팀장님들도 곧잘 내가 관리하는 그룹원들의 사기가 눈에 띄게 올라가고 분위기가 좋아 보인다는 칭찬을 하기 시작한 터였다. 초짜 관리자가 리더십을 그렇게 빠르게 가시적으로 드러내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관리자로서의 확장성을 벌써 인정받은 것일까? 우리 부서 헤드 속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빈말로 사람 속을 싱숭생숭하게 들쑤실 분은 아닌 것 같다. 즉 확정적인 제안은 아니어도 꽤나 무게 있는 질문으로 받아들여도 될 것이다.
정작 나는 덥석 좋다고 하지도 못했지만. 아주 솔직하게 꾸밈없이 나의 고민을 그대로 답했다. 임시로라도 관리 인원 확장은 하고 싶은데, 업무적인 흐름으로 봐도 그게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솔직히 자신이 없다고. 괜히 역량도 안 되는데 덜컥 맡았다가 망치면 어떡하지, 겁이 난다고 했다. 한편, 최근 들어 내게 부쩍 업무적인 고충을 털어놓기 시작한 그쪽 그룹원들에게 좋은 리더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한 마디로 아직 어느 한쪽으로도 결론 내리지 못한 내 단면을 그대로 보여 드렸다. 일단 늦었으니 다음에 더 얘기해 보자는 말을 끝으로 헤드는 퇴근했고 나는 한층 복잡해진 심경으로 한 시간 정도 더 올해 하반기의 불투명한 커리어를 그려보다 졸음에 못 이겨 퇴근했다.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무엇이 닥치든 나는 잘 해낼 것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예상보다 빠르게 관리자로서의 성장을 도모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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