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퇴사 시그널 촉이 좋은 편

MU1 2025. 2. 21. 20:16

몇년 전 동네 와인바에서

직무 상 단순 사무보조 신입이나 계약직들을 거의 4년 가까이 데리고 일했다. 면접도 많이 봤고 1년 반에서 짧게는 3개월 계약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직감이 좀 발달했다. 면접 붙여도 안 오겠다 싶은 사람. 첫 출근부터 바로 런할 것 같은 사람. 그리고 일단 다니긴 하겠지만 이미 맘이 떠서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 이래저래 진득이 붙어있을 것 같긴 한데 회사 측에서 더 연장시켜 줄지 모르겠는 사람. 하필 안 좋은 쪽으로 촉이 발동한다.

계약직 특성상 한정적인 재원이 공급되기 때문인지 돌이켜보니 결과론적으론 별로 좋은 경험이 없었다. 내가 뽑지 않은 직원 중 그나마 정규직 전환된 케이스가 하나 있긴 한데 결국 고용한 매니저가 후회한다고 할 정도로 실패한 채용으로 판명 났다. 상대적으로 정규 전환율이 높은 타 부서 사례를 어깨 너머 보면서 내 탓인가 자책도 조금 했었다. 가장 최근 타 회사 정규직으로 이직하게 된 케이스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정규 전환을 보장해 줄 수 없는 우리 회사 인사 정책의 한계까지 내가 지나치게 떠안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다만 이런 촉이 척척 들어맞을 정도로 내가 너무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관심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좀 부담스럽겠다는 우려는 든다. 어디까지나 동기부여를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업무 태도가 변한 직원에게 최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혹시 고민 있거나 도움 필요하면 말하라고 하는 식의 평범한 매니징이긴 한데 마침 퇴사각을 보고 있었다면 나 같아도 섬찟하긴 할 것 같다. 그래서 그 퇴사 고민을 불식시킬 만큼 내가 덕이 있거나 소위 끗발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아무리 애써도 차가워 보인다는 평판은 좀체 달라지지 않는다. 무리하게 따뜻하고 밝은 척하면 그건 나름대로 어색한 데서 오는 부작용이 있다.

두서없이 스쳐간 연을 뒤로하고 이제는 공식적인 인사고과에 관여하기 시작한 지금의 우리 팀에 집중하려고 한다. 나보다 먼저 이 분야에 정착해 각자 일인분을 해내고 있었던 사람들. 아마 작년에 조직 개편이 많아 부침이 좀 있었던 것 같다. 그리 따뜻한 상사는 못되지만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면서 합리적으로 격려하고 공정하게 피드백을 주는 방식으로 다가가려 한다. 작년에는 공식적인 부하직원 없는 팀원으로서 최고의 평가와 보상을 받았으니 올해는 그런 영광을 우리 팀원들이 누렸으면 한다. 이제 나는 팀원들의 든든한 뒷배로 남을 것이다. 내가 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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